
나는 ‘착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누군가의 호의로, 칭찬으로 건네질 때조차
내 마음 한쪽에서는 늘 같은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아, 또 내가 해야 하는구나.”
착하다는 말은 겉으로 보면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설명 없이 떠안게 되었다.
착하다는 말은 나를 이해해주는 언어라기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조용히 지정하는 신호처럼 작동했다.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역할이 되었다
나는 원래부터 착한 성격이어서 그렇게 살아온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누군가는 필요했고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다.
“네가 착하니까 네가 해줘.”
“네가 이해해줘야지.”
“너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이 말들은 늘 부탁처럼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그 일은 내 몫이 되었고,
그 책임은 설명 없이 나에게 남았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다고 말한 뒤에도 나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야 하는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선택들이
‘착함’이 아니라
경계를 미루는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착하다는 말이 나를 지치게 한 이유
착하다는 말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말이 선을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의 몫인지
그 경계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게 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과를 먼저 하게 되며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해진다.
나는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 말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을 돌보는 감각이 희미해졌다.
지친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누가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보다
내가 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는지를
설명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을.
착하지 않다고 해서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거절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이해해야 할 의무를
한 사람이 독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나는
착하다는 말로 나를 증명해왔다.
버텨내는 사람, 참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
조금씩 소모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이제 나는
착하다는 말로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선택은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책임감 있는 사람이고,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착함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만
제자리에 내려놓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삶의 일부를 정리하는 일이다.
그동안 너무 쉽게 내 몫이 되어버렸던 것들,
내가 하지 않아도 되었던 역할들,
말없이 감당해왔던 책임들을
하나씩 구분해보기로 했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고,
회피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확인 없이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한 문장
나는 더 이상
착함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이 글이 당신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다면
그대로 두고 가셔도 좋습니다.
‘착하다’는 말이 남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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